고려아연이 미국에 11조 원 규모의 비철금속 제련소를 짓는다. 미국 정부가 대주주로 참여하며 오는 2029년 완공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15일(미국 시각) 이사회를 열어 미국 테네시주에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는 안을 의결했다.
공장 건립은 미국 내 종속회사인 '크루서블 메탈즈'가 주도하며 예상 투자액은 10조 9500억 원(약 74억 3200만 달러)이다.
자금 조달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미 국방부(전쟁부)와 상무부, 기업 등이 참여한다. 유상증자가 끝나면 합작법인(JV)은 고려아연 지분 10%를 확보한다.
자금 조달은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및 미국 내 전략투자자가 출자한 합작법인 '크루서블 JV'가 약 2조 8600억 원을 조달한다. 고려아연은 8600억 원을 투자한다.
나머지 자금은 미국 정부 정책금융 지원 및 보조금 프로그램, 재무 투자자 대출 등을 통해 채워진다. 미국 반도체법에 따라 상무부는 최대 300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따라서 고려아연은 이 제련소 운영권을 갖지만 미 국방부가 최대주주(40.1%)로 참여해 각종 행정 규제 해소와 수요처(공급망) 확보를 담당하는 등 해결사 역할을 한다. 미 정부는 기업 가치가 오르면 투자 수익도 챙긴다. 그동안 한국 기업에서는 보지 못한 '국가 주주' 형태의 투자 비즈니스 모델이다.
고려아연의 미 제련소 건설은 한미 정상회담 이튿날인 지난 8월 25일 미 워싱턴의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에게 "우리는 10여 종의 전략 광물을 독자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시작됐다.
고려아연이 인수해 오는 2029년 재탄생할 미국 테네시주 제련소 전경. 이 제련소는 1978년 가동을 시작했다. 고려아연은 미국 국방부(전쟁부) 등과 함께 이 부지를 인수해 기반 시설을 보강해 대형 제련소를 짓는다. 싱가포르 업체 운영 테네시주의 니르스타 제련소 제공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고려아연이 11조 원 규모의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미 테네시주에 건설한다"며 "미국에 큰 승리"라고 환영했다.
러트닉 장관은 "오늘 우리는 고려아연과 함께 테네시주에 최첨단 중요 광물 제련 및 가공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며 "이 시설은 미국 내에서 연간 54만t의 필수 원자재를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광물들은 우리 미래에 가장 중요한 기술, 즉 방어 시스템과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자동차, 데이터 센터, 첨단 제조업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또 "갈륨, 게르마늄, 인듐, 안티몬, 구리, 은, 금, 아연 등 모든 것이 미국 땅에서 생산돼 전투기와 위성부터 반도체 공장 및 전력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원한다"고 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승리하는 방식"이라며 "국내에서 생산하고 공급망을 확보하며 우수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을 세계 산업 및 기술 리더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맨 오른쪽)이 지난 8월 고려아연과 록히드마틴이 게르마늄 공급·구매와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교환 행사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마이클 윌리엄슨 록히드마틴 인터내셔널 사장,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고려아연
한편 고려아연과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는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의 3자 배정 유상증자와 관련해 이날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유상증자의 목적이 미국 제련소 건설 사업이 아닌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는 주장이다.
고려아연 울산 온산제련소 내부 모습. 고려아연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미국 제련소 건설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최 회장의 지배력 유지를 목적으로 설계된 신주 배정은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상법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경영상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정해 인정하고 있고, 경영권 분쟁 중일 때는 특정 경영진에게 유리한 지분을 제공하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주 발행의 절차적 하자도 지적했다.
고려아연이 12일(금요일) 오후 5시 넘어 이사회 소집 통보를 하면서 이사회 구성원에게 핵심 자료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아 내용 검토 시간과 정보 제공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영풍·MBK는 주주 배정으로 미국 제련소 투자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미 회사에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 참여 의사를 전달했다"며 "회사가 자금 조달을 필요로 했다면 가장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인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영풍·MBK파트너스는 법과 시장의 원칙에 따라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고려아연의 지배구조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